땅 계약을 끝내고 나니까 이제 진짜 시작이더라고요. 설계사무소를 알아봐야 하는데, 이게 또 어디서부터 어떻게 해야 하는지 막막했어요. 아는 사람도 없고, 주변에 집 지어본 사람도 없으니까요. 그냥 인터넷 붙잡고 제가 좋아하는 스타일의 주택 사진들을 찾아가면서 어느 사무소 작업인지 하나씩 찾아봤어요.
미팅 전에 A4 세 장 짜리 서류를 만들었다
설계사무소에 연락하기 전에 남편이랑 먼저 숙제를 했어요. 우리가 꿈꾸는 집의 모습, 각자가 원하는 공간, 이 집에서 이루고 싶은 것들을 A4 세 장에 정리한 거예요. 참고 사진도 잔뜩 찾아서 붙였고요. 거창한 게 아니라 그냥 우리가 진짜 원하는 게 뭔지를 눈에 보이게 써놓은 거였어요.
그걸 만들면서 남편이랑 얘기가 참 많이 됐어요. 나는 마당이 넓었으면 좋겠고, 남편은 서재가 꼭 있었으면 하고, 아이들 때문에 뛰어노는 공간은 필수고. 그렇게 각자의 로망을 꺼내놓다 보니까 우리가 짓고 싶은 집의 방향이 좀 더 선명해지는 느낌이었어요.
첫 번째 미팅, 서류도 못 꺼냈다
리스트업 한 곳 중에서 최종적으로 두 곳과 미팅을 하게 됐어요. 첫 번째 사무소에 설레는 마음으로 갔는데, 앉자마자 들은 첫마디가 예산이 얼마냐는 거였어요. 그래서 대충 이 정도 생각하고 있다고 했더니, 그 예산으로는 우리가 원하는 중정형 집은 어렵다고 바로 선을 긋더라고요. 대신 이런 스타일로 지어야 한다며 다른 방향을 제시하는데, 그게 우리가 원하던 집이 아니었어요. A4 세 장 짜리 서류는 가방 안에서 한 번도 꺼내지 못했어요. 밖으로 나오면서 집 짓기를 포기해야 하나 싶기도 했어요. 진심으로요.

두 번째 미팅, 첫마디가 달랐다
그래도 예약은 해놨으니까 두 번째 사무소 미팅은 가보자 했어요. 솔직히 기대는 없었어요. 또 예산 얘기부터 시작하겠지 싶었거든요. 그런데 자리에 앉자마자 그 건축가분이 하는 말이 달랐어요. 어떤 집을 짓고 싶으세요? 였어요. 그러면서 혹시 적어오신 게 있냐고 자연스럽게 물어보시더라고요.
그 말이 나오자마자 가방에서 A4 서류를 꺼냈어요. 읽으시는 동안 저는 좀 긴장했는데, 다 읽고 나서 하시는 말이 이런 공간 너무 좋겠다, 였어요. 우리 생각에 반응을 해주시는 거잖아요. 그 순간 뭔가 통하는 느낌이 들었어요.
건축가를 고르는 기준, 결국 이거였다
돌아보면 좋은 건축가를 고르는 기준이 거창한 게 아니더라고요. 첫마디가 예산이냐, 아니면 어떤 집을 짓고 싶냐냐. 그 차이가 전부였어요. 예산 안에서 가능한 집을 먼저 그리는 사람이 있고, 원하는 집을 먼저 듣고 방법을 찾는 사람이 있는 거예요. 저는 후자를 만나야 했고, 운 좋게도 두 번째 미팅에서 그 사람을 만났어요.
미팅 두 번으로 설계사무소를 결정했는데, 지금도 그 선택이 잘한 거라고 생각해요. 다음 글에서는 그 설계사무소와 함께 도면을 만들어가던 과정을 써볼게요. 그게 또 얼마나 재밌었는지 몰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