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단독주택을 처음 지었을 때 정원에 대해 아는 게 없었습니다. 그냥 화원에 가서 예뻐 보이는 꽃을 잔뜩 사다가 내 마음대로 심었습니다. 심을 때는 뿌듯했습니다. 이것저것 색도 다양하고, 화원에서 볼 때는 다 예뻐 보였으니까요.
그런데 막상 심어 놓고 보니 이상했습니다. 화원에서 그렇게 예뻐 보이던 꽃들인데 정원에 심어 놓으면 색이 죽었습니다. 뭔가 전체적으로 탁하고 촌스러운 느낌이었습니다. 꽃들끼리 색 조합이 있다는 걸 그때는 몰랐습니다.
거기다 한 해만 자라는 꽃과 여러 해를 사는 꽃이 따로 있다는 것도 몰랐습니다. 그냥 섞어 심었더니 한 해가 지나고 나서 뽑아야 하는 꽃인지, 그냥 둬도 다시 자라는 꽃인지 구분이 안 됐습니다. 결국 어느 게 어느 건지 몰라서 그냥 다 뽑고 새로 심기를 반복했습니다. 나중에 구역을 나눠서 한해살이 식물과 여러해살이 식물을 따로 구분해 심고 나서야 관리가 수월해졌습니다. 그런데 정작 색 조합 문제는 그보다 훨씬 오래 걸렸습니다.
색대비: 비슷한 색끼리 심으면 꽃이 사라집니다
보라색 꽃을 심었는데 정원에서 눈에 잘 띄지 않는다면 주변을 한번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보라색 아이리스 옆에 비슷한 계열의 연보라 꽃이 같이 심겨 있다면, 두 꽃은 서로를 죽이고 있는 겁니다. 색이 비슷한 꽃들을 같은 구역에 모아 심으면 각각의 꽃이 돋보이지 않고 전체가 뭉뚱그려 보입니다. 화원에서 낱개로 볼 때는 다 예뻐 보이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배경이 없으니까요.
이때 활용할 수 있는 것이 보색 대비입니다. 보색(complementary color)이란 색상환에서 서로 마주 보는 위치에 있는 색을 말합니다. 노랑의 보색은 보라, 주황의 보색은 파랑, 빨강의 보색은 초록입니다. 보색 관계에 있는 식물을 나란히 심으면 두 꽃이 서로를 밀어주면서 각각이 훨씬 또렷하게 돋보입니다. 붉은색 꽃 옆에 청색 꽃을 심었을 때 두 꽃이 동시에 눈에 확 들어오는 경험을 해보셨다면 이미 보색 대비를 자연스럽게 쓰고 있는 겁니다.
저도 이걸 알고 나서 심는 방식이 달라졌습니다. 화원에서 꽃을 고를 때 예쁜 꽃 하나만 보는 게 아니라, 옆에 무엇을 같이 심을지를 먼저 생각하게 됐습니다.
흰색 꽃: 정원 전체 색감을 조율하는 가장 쉬운 방법
색 감각이 없어도 정원을 파스텔톤으로 만들 수 있는 방법이 있습니다. 흰색 꽃을 활용하는 겁니다.
물감을 섞는 원리와 같습니다. 강렬한 원색에 흰색을 섞으면 톤이 낮아지면서 부드러운 색이 됩니다. 정원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빨강, 주황, 보라처럼 강렬한 원색 꽃들 사이사이에 흰색이나 연한 색의 꽃을 심어 주면 전체 색감이 부드러워집니다. 원색만 모아 놓으면 처음엔 강렬해 보여도 금방 질리는 느낌이 드는데, 흰색이 섞이면 오래 봐도 편안한 정원이 됩니다.
흰색 꽃은 어떤 색과도 어울리기 때문에 색 조합을 어려워하는 분들에게 특히 유용합니다. 색 선택이 막막할 때 흰색 꽃을 중간중간 배치하는 것만으로도 정원의 전체적인 색 균형이 잡힙니다. 저도 지금은 꽃을 살 때 항상 흰색 계열 꽃을 몇 종류 포함시킵니다. 그게 전체를 살려준다는 걸 경험으로 알게 됐기 때문입니다.
배경색과 포인트색: 앞뒤를 구분해서 심으면 정원에 깊이가 생깁니다
정원에서 뒷배경으로 주로 쓰이는 색이 있습니다. 연한 보라, 연한 핑크, 흰색 계열입니다. 이런 색의 꽃들을 뒤쪽에 심고, 앞쪽에는 빨강, 주황, 노랑, 파랑처럼 강렬한 원색의 꽃을 배치하면 뒤에서 받쳐주는 꽃 덕분에 앞쪽 꽃이 훨씬 돋보입니다.
이 방법은 색채 심리학(color psychology)에서도 뒷받침됩니다. 채도가 낮고 명도가 높은 색은 시각적으로 후퇴해 보이고, 채도가 높은 강렬한 색은 앞으로 튀어나와 보이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 원리를 식재에 적용하면 같은 면적이라도 공간에 깊이감이 생깁니다. 특히 좁은 정원에서 효과적입니다. 정원 구석까지 시선이 닿게 되면서 공간이 더 넓게 느껴지는 효과도 생깁니다.
저는 이 방법을 알기 전까지 앞뒤 구분 없이 그냥 예쁜 꽃을 눈에 보이는 자리에 심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강렬한 색 꽃이 구석에, 연한 색 꽃이 앞에 오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배치를 바꾸고 나서 정원 느낌이 달라졌습니다.
자연스러운 식재: 구획의 모양이 정원의 인상을 바꿉니다
색 조합만큼 중요한 게 심는 방식입니다. 같은 꽃이라도 열을 맞춰 줄줄이 심어 놓으면 꽃밭이 아니라 작물 재배지처럼 보입니다. 구획이 자로 잰 듯 딱딱하게 끊어져 있으면 전체적으로 인위적인 느낌이 강해집니다.
자연스럽게 보이게 하는 방법은 간단합니다. 한 가지 식물을 심을 구역의 모양을 다양하게 만들어 주면 됩니다. 직사각형이 아니라 유기적인 형태로 구획을 잡고, 강렬한 색의 꽃은 모아서 심지 않고 한두 포기씩 띄엄띄엄 배치하는 것도 방법입니다. 눈에 잘 띄는 강렬한 색의 꽃은 주변과 색 대비만 잘 된다면 굳이 모아 심지 않아도 충분히 존재감을 냅니다.
몇 해를 돌아서 왔지만 지금은 정원이 훨씬 자연스러워졌습니다. 화원에서 꽃을 고를 때 이제는 단순히 예쁜 꽃을 고르는 게 아니라 어디에, 무엇과 함께 심을지를 먼저 생각합니다. 색 조합이 맞으면 평범한 꽃도 돋보이고, 조합이 틀리면 비싼 꽃도 사라집니다. 정원은 꽃 하나의 문제가 아니라 전체가 어우러지는 방식의 문제라는 걸 이제는 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