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부목 틀밭 하나가 매주 반복되던 텃밭 한숨을 끊어냈습니다. 저도 처음엔 그냥 흙을 파고 두둑만 만들면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비가 한 번 내릴 때마다 무너지는 두둑을 보며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구조가 없으면 텃밭은 의지가 아니라 체력 싸움이 됩니다.
두둑과 고랑이 버텨주지 않았던 첫 시즌
단독주택 입주 첫해 봄, 마당 한쪽 흙을 직접 일궈서 두둑을 만들었습니다. 두둑이란 작물을 심기 위해 흙을 높게 쌓아 올린 이랑을 말하고, 고랑은 농부가 지나다니며 작업하는 낮은 통로 부분입니다. 이 구조는 배수와 통기성을 높이기 위한 전통적인 방식인데, 문제는 고정이 안 된다는 점입니다.
비가 한 번 오면 두둑 옆면이 흘러내렸고, 고랑에는 잡초가 올라왔습니다. 잡초를 뽑다 보면 옆에 심어둔 상추나 대파 뿌리까지 건드리게 됩니다. 반 시즌도 안 돼서 텃밭 앞에서 쪼그리고 앉아 한숨 쉬는 일이 반복됐습니다. 직접 키운 채소를 먹겠다는 설렘은 피로감으로 바뀌었습니다.
일반적으로 텃밭은 흙만 있으면 충분하다고 알려져 있지만, 저는 달랐습니다. 흙이 아니라 구조가 없으면 관리가 지속되지 않는다는 것을 첫 시즌에 몸으로 배웠습니다. 농촌진흥청이 소규모 가정 텃밭에서 두둑과 멀칭(mulching) 관리가 잡초 발생을 최대 60~70% 억제한다는 결과를 제시하고 있는 것도 그냥 나온 수치가 아닙니다(출처: 농촌진흥청). 구조적 관리가 실제 노동량을 줄여준다는 것입니다. 멀칭이란 작물 주변의 흙 표면을 짚, 비닐, 잡초 매트 등으로 덮어 잡초 발생과 수분 증발을 억제하는 방법입니다.
방부목으로 틀밭을 만들기까지

틀밭을 만들어보기로 한 건 그 이후였습니다. 목재상에서 두께 4cm, 폭 14cm 규격의 방부목을 구입했습니다. 방부목이란 목재를 부패와 해충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방부제를 침투 처리한 목재를 말합니다. 일반 목재보다 내구성이 훨씬 높고, 땅에 닿거나 비를 맞는 환경에서 특히 강합니다. 실제로 2020년에 이 방부목으로 만든 틀밭이 지금도 썩지 않고 멀쩡하게 쓰이고 있다는 것을 확인한 뒤로 재료 선택에서는 방부목 외에 대안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치수를 먼저 정하는 것이 핵심이었습니다. 가로 1m 20cm, 세로 60cm, 높이 40~50cm 기준으로 필요한 목재 총길이를 미리 계산했고, 3m 60cm짜리 방부목 세 개면 딱 맞아떨어졌습니다. 자재값이 오른 요즘, 치수 없이 대충 사다가는 돈을 낭비하기 쉽습니다. 제가 직접 써봤는데, 미리 치수를 재고 목재상에 가는 것과 그냥 눈대중으로 사 오는 것은 비용 차이가 생각보다 컸습니다.
조립 방법은 단순합니다. 나무를 자르고 나사를 박아 연결하면 됩니다. 다만 연결 부위에 덧댄 목재를 붙여주지 않으면 시간이 지나면서 이음새가 벌어집니다. 저도 처음에 이걸 생략했다가 한 시즌 후에 한쪽 면이 밀려난 경험이 있습니다. 맨땅 위에 놓을 경우에는 기둥 역할을 하는 목재를 코너 부분에서 아래로 길게 빼서 땅에 박아두는 것이 좋습니다. 그래야 비바람에도 틀밭이 움직이지 않습니다.
틀밭 안쪽 바닥에는 부직포를 먼저 깔아야 합니다. 부직포 없이 흙을 바로 채우면 물이 빠질 때마다 미세한 흙 입자가 조금씩 빠져나가 해마다 흙이 줄어듭니다. 제가 예전에 벽돌만 쌓고 흙을 채운 화단이 있는데, 몇 년 사이에 흙이 눈에 띄게 줄었습니다. 부직포 한 장이 그 유실을 막아줍니다.
틀밭 제작 시 확인해야 할 핵심 포인트는 다음과 같습니다.
- 높이: 시멘트 위에 놓는 경우 최소 30~50cm 확보. 흙 위에 놓는 경우 20cm도 가능
- 재료: 방부목 사용 필수. 두께 4cm 이상 권장
- 연결부: 나사 고정 후 반드시 덧댄 목재로 보강
- 바닥: 부직포 먼저 깔고 흙 채우기
- 맨땅 설치 시: 코너 기둥을 땅 속으로 박아 고정
배수와 보습을 동시에 잡는 토양 구성
틀밭을 다 만들고 나서 흙을 퍼 넣으면 된다고 생각했다면 절반만 맞습니다.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토양 구성에도 원칙이 있다는 걸 그때 처음 알았습니다.
핵심은 배수성과 보습성을 동시에 확보하는 것입니다. 배수성이란 여분의 물이 빠져나가는 능력이고, 보습성이란 토양이 적당한 수분을 머금고 있는 능력입니다. 이 두 가지가 균형을 이루지 못하면 과습으로 뿌리가 썩거나, 반대로 토양이 너무 빨리 말라 작물이 고사합니다.
배수에 좋은 토양으로는 마사토가 대표적입니다. 마사토란 화강암이 풍화되어 만들어진 굵은 모래 성분의 흙으로, 입자 사이 공극이 커서 물 빠짐이 뛰어납니다. 마사토가 없다면 펄라이트(perlite)를 섞어도 됩니다. 펄라이트란 화산 유리를 고온에서 팽창시켜 만든 인공 토양 개량재로, 가볍고 배수성이 탁월해 원예 분야에서 널리 씁니다.
보습을 위해서는 상토나 코코피트를 함께 섞습니다. 코코피트(coco peat)란 코코넛 껍질에서 추출한 섬유질 성분의 배지로, 수분을 오래 머금는 성질이 있습니다. 영양분 보충을 위해서는 부엽토를 추가하면 좋습니다. 부엽토란 낙엽이 오랜 시간 분해되어 만들어진 유기물이 풍부한 흙으로, 식물 생장에 필요한 미네랄과 미생물을 공급합니다.
국립원예특작과학원에 따르면, 가정용 텃밭에서 상토와 마사토를 6:4 비율로 혼합할 경우 수분 유지력과 배수 효율이 가장 균형 있게 유지된다고 권고하고 있습니다(출처: 국립원예특작과학원). 제 경험상 이 비율이 이론에서만 통하는 게 아니라 실제로도 차이가 납니다. 마사토만 넣었을 때는 여름 내내 물을 줘도 금방 말랐고, 상토를 함께 섞고 나서야 물 주는 간격이 눈에 띄게 늘었습니다.
한 가지 아쉬움이 있다면, 처음에 시멘트 위에 놓은 틀밭의 높이를 충분히 확보하지 못한 것입니다. 뿌리가 아래로 뻗을 땅이 없는 구조인데, 높이를 30cm 정도로만 맞췄더니 뿌리가 깊이 내려가는 작물에서 생각보다 약한 결과가 나왔습니다. 다음에 하나 더 만들 계획인데, 그때는 높이를 50cm로 잡을 생각입니다. 처음부터 넉넉하게 만들어두는 게 낫습니다.
틀밭을 쓰기 시작하면서 텃밭 관리가 달라졌습니다. 비가 와도 영양분이 흘러내리지 않았고, 고랑 부분에 잡초 매트를 깔아두니 잡초 문제도 크게 줄었습니다. 매주 반나절을 써야 했던 관리가 주말 오전 한 시간 안으로 들어왔습니다. 방부목 몇 장과 나사 한 봉지가 이 차이를 만들어줄 줄은 몰랐습니다.
처음 텃밭을 시작하는 분이라면 크게 만들 필요가 없습니다. 작은 틀밭 하나를 제대로 관리하며 내가 어느 정도까지 감당할 수 있는지를 먼저 파악하는 것이 맞습니다. 틀밭은 텃밭을 쉽게 만들어주는 도구이지, 텃밭을 대신해 주는 도구가 아닙니다. 구조를 갖추는 것과 그 구조에 꾸준한 손길을 더하는 것, 둘 다 있어야 텃밭이 유지됩니다. 올봄에 무엇을 심을지 벌써부터 생각하고 있습니다.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xs31rsJv-qg&list=PLOnwvtDyIKCmsnEH0RNe1uyq66hj8Nm9D&index=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