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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4 세 장짜리 로망 계획서가 집이 되었습니다

by jundanyul26 2026. 3. 30.

설계사무소를 정하고 나서 처음 미팅 날짜를 잡았을 때, 좀 떨렸어요. 드디어 진짜 시작이구나 싶기도 했고, 우리가 원하는 걸 얼마나 잘 전달할 수 있을까 걱정도 됐고요. 그런데 그 걱정이 무색하게도, 설계 과정 3개월이 제 인생에서 손꼽히게 재밌는 시간이 됐어요. 나중에 알고 보니 이게 그냥 재미있었던 게 아니라, 우리가 준비를 꽤 잘했기 때문이기도 하더라고요.

 

A4 세 장, 거기서 모든 게 시작됐다

설계사무소 미팅 전에 남편이랑 둘이 앉아서 우리가 이 집에서 원하는 게 뭔지, 각자의 로망이 뭔지, 아이들한테 어떤 공간을 만들어주고 싶은지 하나씩 꺼내 적었어요. 참고 사진도 인터넷에서 찾아서 붙이고, 생각보다 꽤 공들인 서류가 됐어요. 그게 A4 세 장이었고요.

건축가분이 그 서류를 꼼꼼히 읽으시더니 이런 공간 너무 좋겠다고 반응을 해주셨어요. 그 순간부터 설계가 시작된 거예요. 나중에 건축가분이 하시는 말씀이, 건축주가 원하는 걸 글이든 사진이든 미리 정리해 오면 첫 미팅이 완전히 달라진다고 하셨어요. 방향 잡는 시간을 아끼고, 바로 구체적인 이야기로 들어갈 수 있다고요. 저는 그냥 우리 생각을 정리해 간 것뿐인데, 그게 꽤 효과적인 방법이었나 봐요.

우리가 꿈꾸던 집의 설계를 대략 그려서 건축가와 미팅하는 모습

 

설계는 세 단계로 나뉜다는 걸 나중에 알았다

설계를 진행하면서 건축가분이 단계별로 설명을 해주셨는데, 집짓기 전에는 전혀 몰랐던 이야기들이었어요. 단독주택 설계는 크게 기획설계, 기본설계, 실시설계 세 단계로 나뉘어요.

기획설계는 말 그대로 방향을 잡는 단계예요. 어떤 집을 지을지, 땅의 조건은 어떤지, 건폐율이나 용적률 같은 법적인 제한은 뭐가 있는지 파악하고 전체 밑그림을 그리는 거예요. 우리는 이 단계에서 A4 서류가 정말 큰 역할을 했어요. 건축가분이 우리 서류를 기준으로 방향을 잡아주셨거든요.

기본설계는 평면도, 입면도, 배치도 같은 기본 도면을 만드는 단계예요. 우리가 미팅마다 집에 가져가서 들여다보던 도면들이 바로 이 단계에서 나온 거예요. 수정하고 또 수정하고를 반복했던 게 이 단계였고, 저한테는 설계 과정 중에 가장 재밌는 시간이기도 했어요.

실시설계는 실제로 시공이 가능한 수준의 상세 도면을 만드는 단계예요. 창문 크기, 마감재, 단열 방식 같은 세부 내용까지 다 담기는 거라서 시공사에 견적을 넣을 때 이 도면이 기준이 돼요. 우리가 나중에 세 곳의 시공사에 견적을 넣었을 때도 이 실시설계 도면을 기준으로 했어요.

 

건축주가 미팅에서 꼭 챙겨야 할 것들

설계를 다 마치고 나서 돌아보니까, 미팅마다 챙겼으면 더 좋았을 것들이 보이더라고요. 집 짓기를 준비 중인 분들한테 도움이 될 것 같아서 정리해 봤어요.

첫째로, 각 미팅의 결정 사항은 반드시 문서로 남겨두는 게 좋아요. 구두로만 이야기하다 보면 나중에 서로 기억이 다를 때가 생기거든요. 저는 미팅 끝나고 집에 와서 오늘 결정된 것, 다음 미팅까지 확인해야 할 것을 메모하는 습관을 들였어요.

둘째로, 변경 사항이 생길 때마다 추가 비용이 발생하는지 바로 확인하는 게 좋아요. 설계 중에 이것저것 바꾸다 보면 나중에 예상치 못한 금액이 붙는 경우가 있거든요. 우리 건축가분은 워낙 친절하게 설명해 주셔서 크게 문제가 없었는데, 계약 전에 수정 횟수나 범위에 대한 기준을 미리 물어보는 게 안전해요.

셋째로, 설계비 계약서에 기획설계, 기본설계, 실시설계 각 단계별 납부 조건이 명확히 적혀있는지 확인해야 해요. 보통 설계비는 단계별로 나눠 내는데, 어느 시점에 얼마를 내는지 계약서에 없으면 나중에 애매해질 수 있어요.

건축사 사무소에서 만들어준 우리 집의 설계 모형

 

수정하고 또 수정하고, 그 과정이 재미였다

피드백을 메모해서 다음 미팅에 가져가면, 건축가분이 그걸 반영해서 수정된 도면을 또 만들어오시는 식이었어요. 어떤 분들은 이게 번거롭지 않았냐고 물어보시는데, 저는 진짜 하나도 안 번거로웠어요. 오히려 다음 미팅이 기다려졌으니까요. 어떤 미팅 때는 모형도 만들어서 가져오셨는데, 작은 모형으로 우리 집 구조를 입체적으로 보는 게 너무 신기해서 한참을 이리저리 들여다봤어요.

우리가 가장 많이 고민했던 공간은 중정이었어요. 중정형 집을 원했는데 예산 문제로 포기해야 하나 싶은 순간도 있었거든요. 그런데 건축가분이 여러 방법을 같이 고민해 주셔서 결국 회랑 형태의 공간을 넣을 수 있게 됐어요. 지금 그 공간이 우리 집에서 제일 좋아하는 자리예요. 날 좋을 때 거기 나와 있으면 그냥 행복하거든요.

 

3개월이 이렇게 빨리 간 적이 없었다

설계 기간이 대략 3개월이었는데, 정말 순식간에 지나갔어요. 아이 셋 키우면서 내 일 하나에 이렇게 설레는 경우가 잘 없잖아요. 미팅 날이 다가오면 뭘 피드백할지 메모를 정리하면서 들뜨기도 하고, 도면이 어떻게 바뀌어 올지 기대하면서 잠들기도 했어요. 설계를 이렇게 즐길 수 있었던 게 건축가를 잘 만난 덕분이라고 생각해요.

 

설계가 끝나고, 시공사 견적을 넣었다

3개월의 설계가 마무리되고 실시설계 도면이 완성되자, 건축가분이 추천해 주신 세 곳의 시공사에 같은 도면으로 견적을 요청했어요. 같은 도면으로 여러 곳에 견적을 넣어야 비교가 의미 있다는 건 건축가분이 미리 알려주셨어요. 그런데 견적서를 받아보고 나서 진짜 멘붕이 왔어요. 그 이야기는 다음 글에 써볼게요. 설계가 그렇게 행복했는데, 견적서 하나가 분위기를 확 바꿔버렸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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